IV. 기계론자들과 아낙사고라스ㅡ물질과 정신
헤라클레이토스와 엘레아학파의 견해는 극단적인 태도였다. 만약에 그 다음 시대에, 이런 대립을 시정하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시도는 행해졌다.
A. 기계론자들
엠페도클레스는 아크라가스, 즉 오늘날의 시칠리아섬의 아그리겐토 출신으로 기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심신의 정화를 주장하는 종교의 사제요 신비가였으며, 다른 편으로는 순회설교가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었으며, 또 정치가요 의사요 시인인 동시에 냉철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를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신처럼 세계를 떠돌아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휄덜린도 그에게 심취해서, 자기의 시에서 그를 열광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모든 죽어버리는 사물들 중에서 태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저주받은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것도 없으며, 오직 혼합과 이 혼합된 질료들이 뒤바뀌는 일만 있을 뿐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자기의 네 가지의 뿌리들 안에 동시에 어떤 영적ㅡ신적인 것들이 들어 있다고 보았다. 이들의 이름은 제우스, 헤레, 네스티스 및 아도네우스이다. 르네쌍스 시기의 연금술사들도 이 「영혼들」을 불러냈으며, 괴테에 있어서도 이들은 살라만더, 운데네, 실페 및 코볼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원소와 관련되어 있는 세계의 궁극적인 구성요소가 영원하다고 하는 그의 두 번째의 생각이다. 이것을 후세의 사람들은 「물질보존의 법칙」이라고 한다.
엠페도클레스는 질료에다 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원초적인 실체는 어떻게 하든 움직여야만 한다. 이 운동은 두 가지의 원초적인 힘, 즉 사랑과 미움에 의해서 생긴다.
새로운 점은 생성을 규칙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사건)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다. 이런 점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생성을 원소의 분자들이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 우리는 일종의 기계론적인 사고의 최초의 싹을 볼 수 있다.
b)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고대의 기록들은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를 합쳐서, 원자론과 유물론의 전형적인 대표자로 삼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의 빛나는 업적은 레우키포스를 완전히 그늘에 숨겨버려, 우리는 그의 이름만 겨우 알고 ㅇㅆ을 정도다. 그럴수록 우리들의 눈에는 아브데라의 데모크리토스가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에 버금갈 만큼, 보편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한 층 더 위대해 보인다.
다음과 같이 긴 그의 저작목록만 보아도 그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세계질서, 자연, 유성, 인간, 정신, 감각적인 지각, 색채, 여러 가지 원자의 형태, 사고의 규칙, 원과 공의 접촉, 독립적인 직선과 원자, 수, 리듬과 조화, 시 쓰는 법, 의학적인 인식방법, 농경방식, 그림, 전술, 현자의 마음가짐, 죽은 뒤의 생명 등등의 많은 저서들이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을 다 연구하려는 포괄적인 정신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저작들이 단편에 이르기까지 다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데모크리토스는 이론적으로는 유물론자였다. 그는 페르시아왕국의 왕관을 쓰는 것보다, 어떤 인과관계를 발견해내는 것을 더 행복하게 생각했다. 이런 것에서 그는 영혼의 평온함을 찾았다. 사람들은 그를 웃는 철학자라고 했다.
데모크리토스철학의 기본사상은 원자에 관한 이론이다.
원자는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꿰뚫고 나갈 수 없는 것이며, 무겁고, 영원하며, 파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원자의 수는 무한하다. 원자에는 질이 없다. 모든 원자들은 꼭 같은 종류다……원자들은 서로 다르게 배열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위치를 택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해서, 즉 순수히 양적인 계기들에 의해서 사물들 사이의 차이가 설명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있어서는, 파르메니데스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존재가 다시 한 가지 모양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파르메니데스와는 반대로, 데모크리토스는 양이니 장소의 이동이니 하는, 다른 차이들은 인정한다. 원자들은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를 하고 있으며, 그 질서와 공간에 있어서의 위치를 변한다.
그럼, 감각적인 지각에 의해서 우리들이 알게 되는 현상의 세계에 있는 사물들의 서로 다른 성질, 즉 단맛, 쓴맛, 따뜻함, 여러 가지 색깔 등등은 위에서 말한 것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 이 감각적인 지각을 주관적인 것, 즉 우리들에게 그렇게 보일 뿐이지, 객관적인 실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의식 속에서 체험되는 감각의 성질은, 자연의 원문을 자신의 주관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우리들의 감각기관의 활동에 따라 정해진다.
이렇게 해서 데모크리토스는, 근세에 와서 데까르트와 록크가 주장했던 제일차적인 감각의 성질과 제이차적인 감각의 성질의 구별을 앞질러 주장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천계와 우주에 있는 사물 전체가 스스로 움직이게 해 주는 몇 가지의 원인들이 있다. 즉 소용돌이도 저절로 일어나거니와, 분리와 결합에 의해서 만물을 지금 성립되어 있는 질서에 끼여넣을 운동도 저절로 생긴 것이다」
위에서 본 모든 것들은 기계론적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전형적인 유형이다. 자연은 이제, 신화에서나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있어서처럼, 신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우리들은 이제, 엠페도클레스에서 본 바와 같은 깊은 생각이니, 죽음이니, 의지니 하는 따위의 인간과 비유되는 범주를 가지고 있지 않고, 물체와 운동만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것들과 함께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은 압력과 충돌이다.
모든 것은 물체와 그 안에 깃들이고 있는 법칙에 의해서 엄격하게 인과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물체와 공간과 운동은 양적으로 재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인과적인 결정론의 바탕 위에서는, 세계에서 생긴 모든 것들을 합리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뒤에 와서 검토해 볼 수도 있으며, 미리 꿰뚫어 볼 수도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소위 계량적-기계론적인 자연관찰의 길을 열었는데, 이것이 근대의 자연과학괴 기술, 그리고 이 과학과 기술이 세계를 지배할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근대적인 견해를 창시한 사람인 갈릴레이와 가쌍디에서부터, 에피쿠로스, 그 스승 나우시네파네스 및 그 스승의 스승인 키오스의 메트로도로스를 거쳐, 아브데라의 데모크리토스까지는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
우리들이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려고 할 때에는 과연 다른 원인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들이 당장 제기될 것이다……괴테는 「너희들은 부분들은 손에 쥐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것들을 얽어맬) 정신적인 끄나풀은 가지고 있지 못하구나」 할는지도 모른다.
사고도 매한가지로 원자의 운동이다. 감각적인 인식도 당연히 그렇다……감각적인 인식과 정신적인 인식의 차이는, 오직 단계적인 차이일 뿐이다. 사고란 감각적인 지각보다 미묘하고 날쌘 원자의 운동이다. 여기에서 유물론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세계에는 물질적인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영혼과 정신은 독자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원자와 원자의 운동에 불과하다.
데모크리토스의 윤리학은 위에서 말한 것과는 다른 것 같다. 그의 실천적인 생활규칙은 높은 이상주의를 띠고 있었다……데모크리토스의 「쾌활」은, 근본적으로는 일종의 쾌락주의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에피쿠로스학파의 사람들은 그의 쾌락주의를 계승·발전시킨다. 모든 사고와 마찬가지로 모든 감정도 원자의 운동이다……이 윤리학은 철두철미하게 원자론에 들어맞는다. 그리고 형이상학, 인식론 및 윤리학 등, 이 전체가 하나의 체계적이고 종합된 모습으로 다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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