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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죽음 개가 죽으려 한다. 중학교 때 데려왔으니 10년도 더 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은 진작 넘겼고 내일 당장 어떻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이름은 꽃님이다. 내 기억은 아빠가 데려온 날부터 꽃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꽃님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얘기해주고 있지만, 확실치 않다. 꽃님 하면 일반인이 남자 연예인과 데이트 하던 TV프로에 나왔던 바로 그 일반인 꽃님과 분명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구애하고 했을 남자 연예인들의 어렴풋한 얼굴과, 그것을 보고 있던 나와 브라운관 사이의,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공기가 떠오른다. 그것은 꽤나 축축하고 명징한, 내게는 '가정'이라는 이미지와 상통하는 벽지의 백색이다. 사정이 있어 2주 정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꽃님은 그새 팍삭 늙었다. 부모님 몰래 새벽.. 더보기
이이체 - 詩 詩 이이체 몸에 당신의 일기를 베끼고 바다로 와서 지운다. 내 죽음으로 평생을 슬퍼해야 할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 당신은 말해진 적 없는 말. 모든 걸 씻고, 이렇게 당신이 바다에서 눈물을 흘린 게, 눈물을. 바다의 푸른 계단이 차례로 무너져 내리고, 절벽에서 하얀 고통들이 비명을 지르며 부서진다. 거품들이 분말처럼 흩어지면 당신이 흘려둔 해식애로 세워지던 안개도시. 파도는 내 몸에 알맞다. 나쁜 말들뿐이다. 나는 아직 당신에게 내 얼굴의 절반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당신은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가. 나는 쓴다. 쓴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쓴다. 쓴다고 생각하기 위해 쓴다. 쓴다. 지운다. 카우보이비밥을 보고 싶다. 맥주 몇 잔 마시면서. 특별할 것도 없는 에피소드들. 기억에 남는 장...면들 몇. 음.. 더보기
Que reste-t-il de nos amours Charles Trenet - Que reste-t-il de nos amours que reste-t-il de nos amour -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우리의 사랑에서 무엇이 남았나요?" 라고 주로 번역이 되어있지만, "우리의 사랑에 무엇이 남았나요?"가 맞다. '에'와 '에서'의 차이. 이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굴복한다. 단 한 음절에도 나는 무릎 꿇을 수 있다, 하물며. 가끔 나의 월권에 가까운 넋두리를 이해해주기를, 단지 이것은 너를 향한(너에 대한이 아니라). 이 샹송은 2차대전 때 독일군에 대항하는 프랑스군이 시가전의 스피커에 수도 없이 틀었었다. 나치 점령하의 파리. 이 무장해제를 유도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리의 사랑에서'가 마이너스(-)라면, 그러니까 아예 종말한 관계.. 더보기
꿈과 여러 가지 이미지 카메라(leika r6,1990년産)와 가정용 독서실 책상과 자동차(구형 아반떼, 흰색)와 전자피아노(멜로디언이어도 좋다) 등을 사고 싶다. 종하가 꾼 꿈. 너는 간밤에 꾼 꿈을 까먹었다고 해놓고 어제 있었던 일을 꼭 꿈처럼 얘기하는 재주가 있다. 꿈은 무목적의 합목적성(칸트)에 가장 들어맞다. 여러분은 예술의 필요성을 수긍하기 위해서 단지 이것만 떠올리면 될 것이다. 꿈을 꾸기 위해서 다시 잠을 청할 때의 나른함과 눈꺼풀에 걸린 적당한 무게. 돌아오는 길에 통화했다. 버스 계단을 오르면서 약간 어지러웠다. 고작 꿈을 꾸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것은 미학적으로 올바른 꿈. 느린 시간의 잠. 나이가 드니 자주 힘이 빠진다. 유년에 무한히 잃어버리던 길. 잡은 손을 빠져나가는 손. 올 겨울은 반드시 몽골에 다.. 더보기
노트르담 드 파리 감상문 2013학년도 1학기 전금주 교수 지도 ‘노트르담 드 파리’ 감상문 각색에 대하여 내가 본 뮤지컬은 몇 안 된다. 뮤지컬 작품들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뮤지컬 장르에 대한 편견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물질성을 갖는 공연을 관람하는 것보다는 글로 된 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원작을 각색하여 상연하는 것은 공간과 시간적인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공을 들인다 해도 감상하는 데 있어서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 된 작품을 읽을 때와 극장에서 연극을 볼 때를 비교해보면, 우선 텍스트는 완성된 형태로 주어져 멈춰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자신의 읽는 행위를 지배할 수 있다. 필요하면 언제고 다시 돌아가서 읽을 수 있고 읽는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는 등.. 더보기
『어린 왕자』를 읽고 2013학년도 1학기 서양 문학의 이해 전금수 교수 지도 『어린 왕자』를 읽고 가 1943년 처음으로 미국에서 출간된 지 어언 70해가 지났다.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전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 팔렸을 것이며 1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화제의 주인공 ‘어린 왕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이 인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는 이 책을 레옹 베르트라는 어른에게 바쳐서 어린이들에게 미안하다는 한 비행사의 헌사로 시작한다. 레옹 베르트는 생텍쥐페리가 실제로 우정을 나눈 프랑스의 문인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추위와 굶주림을 겪으며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7p) 여기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음은 다른 보통 .. 더보기
Abstrakt Idea - Sincere Sunset 밤의, 옥상 1 옥상은 고요하다, 특히 밤의 옥상이라면 더더욱 고요하다. 아무리 난잡하게 건물이, 아파트가, 교회가 들어선 지대여서 소란스럽고 지저분하며 때로는 징그럽기까지 한 도시라도, 아니 그러한 도시일수록 옥상은 순수를 지키고 서있다. 너무 숭고해서 어처구니없는, 그런 순수를 옥상은 늘 간직하고 있다. 옥상에 올라간 인간은 겸허해지는 것, 밤에 들어선 인간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 이것을 그저 위치에너지와 지구와 태양 간의 역학 관계에서 계기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무겁고 거대한 돌덩어리들의 위치 바꿈과, 미시적인 좌표 상의 이동 그 어디에서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안에서 더듬어보는 인간의 포즈는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의 울음이 울음이게끔 하는 곳, 밤의 옥상이다. 인간 아닌 것들과.. 더보기
「환상수첩」을 읽고 「환상수첩」을 읽고 ㅡ황홀했던 간밤이여 그리고 백기…………… 죄는 성聖의 반의어로서 정립이 가능하다. 세속의 세계, 김승옥의 소설 세계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생활 그 자체가 밀림의 왕이다. 생활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잠식한다. 서커스 삼십 년 경력의 이씨나 연두색의 달인으로서의 아버지는 그런 생활에 의해 잠식된 인물을 대표한다. 감색 교복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생활이 소설의 결말이 암시하듯이 지옥이거나, 적어도 무목적으로 가득찬 미스테리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서울-고향 구도는 사실상 거의 의미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하향은 오히려 진실한 의미에서의 상경이다. 그가 순천에서 여수로, 여수에서 거문도로 점점 더 내려갈수록 이 생활이라고 하는 레토릭이 적용되는 범위는 늘어난다. 깡패들이 진영을 윤.. 더보기
비트겐슈타인-규칙과 사적 언어 크립키가 제시한 회의적 역설에 대하여 1. 비트겐슈타인의 회의적 역설 §201. 우리의 역설은, 어떤 하나의 규칙이 어떠한 행동 방식도 확정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각각의 모든 행동 방식이 그 규칙과 일치되게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유의미하다고 간주되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 그 행동의 주체와 그것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행동은 그것이 주체의 의도에 따라 행해진 것일 경우 그리고 동시에 그 행동을 통해 주체의 의도가 관찰자에게 성공적으로 전달되었을 경우에 의해 의미를 획득한(의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때, 의미는 의사소통을 위한 행위자와 관찰자 간의 최소공약수라고 볼 수 있다.(여기서 관찰자가 꼭 타인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 최소공약수에 관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