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여름
1
언젠가 너와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면서, 그때 나는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었음에도, 실은 잡힌 손의 힘이 계속 빠져 나가고 있던 것에 불안해하며, 아주 어릴 때 처음 길을 잃었을 때의 적막을 떠올리며, 나는 단지 그때부터 주욱 계속 길을 잃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조용한 길, 어디로 가든 무한히 펼쳐지던 그 길 앞에서, 자꾸만 내가 있던 곳에서 멀어졌고 손끝은 희미해져 결국엔 그만, 주저 앉아 울어버리고 싶었던 그 막연한 거리감이 생생히 되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 길을 찾음이란 결국, 길 위에서 자신을 자연스럽게 잃어주는 일에 불과하다고 읊조린 것은 이미 충장로를 빠져나오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2
그 이후로도 많은 것이 변한 도심 속에서 이런 산문조의 바람이 세차게 오늘의 나를 스쳐가는 것을 곱씹는다. 따라서 그 손을 붙잡고 일으켜준 것은 우연히도 내 옆에 있었던 네가 아니라, 다만 거리였음을, 나는 알아가게 될 것이었다. 그 거리는 내가 앞으로도 무한히 내던져질, 그러나 그렇기에 나를 일으킬, 아직은 명명하기 조심스런 미지의 이름이고 확신하는 것은 나는 다만 거리 속에서 영영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라는 것, 아니 차라리 잊기를 열렬히 거부하는-셔터 이전의, 사진으로 결코 담아내지지 않는 어떤 울적한 찰나의 포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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