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옥상
1
옥상은 고요하다, 특히 밤의 옥상이라면 더더욱 고요하다. 아무리 난잡하게 건물이, 아파트가, 교회가 들어선 지대여서 소란스럽고 지저분하며 때로는 징그럽기까지 한 도시라도, 아니 그러한 도시일수록 옥상은 순수를 지키고 서있다. 너무 숭고해서 어처구니없는, 그런 순수를 옥상은 늘 간직하고 있다. 옥상에 올라간 인간은 겸허해지는 것, 밤에 들어선 인간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 이것을 그저 위치에너지와 지구와 태양 간의 역학 관계에서 계기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무겁고 거대한 돌덩어리들의 위치 바꿈과, 미시적인 좌표 상의 이동 그 어디에서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안에서 더듬어보는 인간의 포즈는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의 울음이 울음이게끔 하는 곳, 밤의 옥상이다. 인간 아닌 것들과 인간인 것들이 서서히 구별되기 시작하는 경계의 곳, 그것은 장소이기 전에 천문학과 기하학 같은 문법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일종의 오자다. 그래서 옥상에 서면 어떤 인간의 목젖에서는 그런 구름들이 서서히 타이프된다. 이번 생엔 내내 가져볼 일 없을 구름까지도 옆에 선 여자를 포옹할 때 여자가 뱉는 순간의 신음처럼 어리둥절한 리듬으로 뿜어져 나온다. 그러면 밤은 옥상에게 머무르기를 청하고 인간들은 그 초대에 삽입되는, 풍경을 채색한다.
2
나는 참 많은 옥상을 가졌었다. 옥상 편력이 심하다 해도 좋을 정도다. 많은 옥상들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넘겼었다. 무거운 페이지들이 그렇듯, 잘 넘어가지는 편은 아니었다. 맹세코 가벼운 옥상은 하나도 없었다. 낮은 곳에 있던 옥상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산을 오르는 이유는 하늘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겨놓고 온 발자국 하나 하나를 되새김질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한다. 내려가기 위한 길을 공을 들여 미리 새겨 놓는 마음가짐으로 발자국을 옮겨주는 것일 뿐. 작년 여름, 지리산에서 야간 산행을 하던 중 큰 바위에 뻗어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찢어진 지도처럼 하늘에서는 지독히도 많은 길들이 미끄러져 내렸다. 나는 두 번 다시 같은 길을 밟을 수 없었다. 그렇듯 나의 옥상에는 언제나 나의 밤이 기거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를 기다린다. 그동안은 쉽게 울지 않을게요.
20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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