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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NOTES

2013/05/09

 피시방에서 퇴고 작업을 하며 던힐을 피우고 있다. 나는 초심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던힐을 주문한다. 고2 5월 둘째주 토요일 던힐을 피웠다. 내가 담배를 처음 피운 순간이라 아직 기억하고 있다(남에게 얘기하기 위해서 숫자로,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누구나 감탄을 한다, 그 날의 느낌을 애써 전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의도와 달리 사기꾼이 된다, 아 5월의 땡볕이여). 그 뒤로도 여러 담배들이 내 입술에 오고 갔다.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처음 사귄 여자친구와 같이 피운 말보로 라이트. 안암역 근처 무슨 까페였을 것이다. 초록색 쇼파 위였다. 그날 고려대학교 병원 로비에 앉아서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키스를 했고 떠나 보내는 지하철에서 사귀기로 했다. 이렇게만 적으면 내가 너무 미화를 하는 것 같아서 낯짝이 뜨겁다. 전후를 모두 생략했으므로. 훨씬 더 중요한. 더러운 것들. 치정살인과 어울릴 만한 묘사들.(하지만 여기서 너가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지독한 에고이즘>-왜 인간은 이 모양인가? 늘 던지는 질문들. 굳이 연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늘 파탄나고 어쩐지 너는 시시하고 나는 너보다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서) 이후로 너무 많이 떠나왔지만 결국 나는 나로부터도 훨씬 멀리 와 있는 것 같다. 어딘가 마구 얻어맞은. 문득 이 물리物理가 슬프다. 가끔 이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때가 있다. 유감이다 모두에게. 특히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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