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학년도 봄 학기
<한국현대작가작품론>
장일구 교수 지도
오정희 작가론
1. 오정희의 이력
작가 오정희는 1947년 11월 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고를 거쳐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오정희의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 때문에 오정희의 가족은 바로 피난하지 못하고 공산치하의 서울에서 석 달을 보낸다. 1951년 1·4 후퇴 때 국군 트럭을 얻어 타고 가다가 충남 홍성군에 내리게 된다. 1955년 아버지가 석유회사 인천 출장소 소장으로 취직되면서 인천시 중앙동으로 이주한다. 이후 1959년 아버지의 전근으로 오정희의 가족은 서울 마포구 신수동으로 이사한다.
국민학교 때부터 글 짓는 실력이 남달랐던 오정희는 1966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고 여기서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김수영, 김현의 강의를 듣는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이후 「주자」(1969), 「직녀」(1970), 「관계」(1971), 「봄날」(1973) 등을 계속 발표하다가 1974년 결혼하고 1978년 강원대 전임강사로 임용된 남편을 따라 춘천에 정착한다. 「적요」(1975), 「안개의 둑」(1976), 「미명」(1977), 「불의 강」(1977), 「저녁의 게임」(1979), 「중국인 거리」(1979), 「비어 있는 들」(1979), 「유년의 뜰」(1980), 「별사(別辭)」(1981), 「그림자 밟기」(1987), 「파로호」(1989) 등의 문제작을 계속 발표하였다. 1977년 첫 창작집 『불의 강』을 출간한 이래 작품집 『유년의 뜰』(1981), 『동경(銅鏡)』(1983), 『옛 우물』(1994), 『바람의 넋』(1986), 『불망비』(1987), 『불꽃놀이』(1995), 『새』(1996), 『돼지꿈』(2008), 『가을 여자』(2009) 등을 발간하였다
2. 오정희의 초기작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육체적 · 심리적 불구
1968년부터 1977년까지의 오정희의 초기작들에서는 예외 없이 불임과 낙태 및 영아살해 혹은 모성실조 1가 소설의 배경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첫 번째 소설집 『불의 강』의 주인공들만 살펴봐도 그렇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돌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탈수증으로 죽은 아이의 어머니(「불의 강」)부터,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 보내고 식물인간 노파를 돌보게 된 여성(「미명未明」), 혼전 임신으로 인해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자신의 의사에 반해 낙태를 한 아내의 남편(「안개의 둑」), 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며 죽어가던 와중 어린 아이를 집으로 납치하다시피하는 반신불수의 노인(「적요」), 자신을 낳고 신내림을 받아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생모처럼 자신도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성(「목련초木蓮草」), 익사할 뻔한 자신을 구해준 어머니와 반대로 끊임없이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여성(「번제燔祭」),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는 여성(「직녀」)까지 한 작품도 빠지지 않고 모성성이 문제시되고 있다는 사실과 각각의 주인공들이 육체적인 불구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육체적 불구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쓰기>란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욕망의 발현이었다. / 어차피 나는 이제껏 <소설>이라는 무대, 장치를 빌려 너무 많이 자신의 얘기를 해왔다. …… 내겐 동화의 시절이 없었다. 성에 갇힌 공주나 아름답고 멋진 왕자의 이야기, 순정의 눈물은 아예 없었다.”
ㅡ 오정희, 「나의 소설, 나의 삶」 中
오정희 소설의 거의 모든 화자가 30-40대의 중년 여성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그녀의 소설이 자전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충분히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춘천에 정착하여 아이를 낳게 된 후 발표한 소설들에서 낙태 모티프가 사라진다는 점(하응백)에서도 역시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이야기가 그녀의 경험담일 것이라 추측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정희의 소설들이 그리고 있는 여성들에게서 어떤 일관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사적이고 내밀한 욕망”의 발원지를 찾아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오정희의 초기 소설들에서는ㅡ물론 대부분의 소설들이 10장 내외의 단편이라는 점에서 연유한 것도 있겠지만ㅡ주로 셋 내외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대개 두 명의 중심적인 여성-남성의 대립항과 부모가 존재한다. 여성-남성 대립항에서 성역할은 간혹 뒤바뀌기도 하지만 주로 여성의 일방적인 구애와 주로 남성의 폭력과 유기라는 행위로 묘사된다.
“아버진 더욱 빈번히 집에 돌아왔고 그때마다 가정부는 잠자리를 아버지 방으로 옮겼다. 그녀는 서서히 나의 어머니의 위치로 변해갔다. 그녀는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쉴새없이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이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단조로운 집 안 공기를 흔들어놓았다. 집 안 어디서나 걱실걱실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고 아이들은 돌이 지나 아우를 볼 때쯤이면 설사를 하다 죽기도 했다.” 2
ㅡ 완구점 여인 中
“그러나 밤마다 거듭되는 그와의 끈질긴 싸움 끝에 어느 날 문득 최초로 잉태의 기미를 손끝으로 느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서 완벽하게 떨어져나온 격렬한 충격을 맛보아야 했다. 나는 내 속에 또 다른 하나의 알을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3
ㅡ 燔祭 中
「완구점 여인」에서의 ‘나’의 아버지는 가정부와 불륜을 저지른다. 의붓어머니 역시 오정희의 소설에서 되풀이되는 소재인데, 아이의 입장에서 가장 신성한 것으로 느껴져야 할 모성성은 불륜 관계를 목격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생산성’으로 대치된다. 친동생의 죽음으로 극한 슬픔에 빠지는 주인공이 의붓동생의 출생과 죽음을 무미건조하게 서술하는 대목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여기에서 아버지와 가정부의 성관계가 ‘생산’ 행위로 치환되었다면 「燔祭」에서는 애인과의 성관계가 “싸움”이 된다. 이 파격적인 은유는 불륜 같은 비윤리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남녀 일반, 나아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회의를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燔祭」뿐만 아니라 부부 혹은 잠재적인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등장하는 작품에서도 이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관계를 유지한다.
이렇듯 성스러운 연애-결혼이 불가능하다는 정신적인 불구 상태는 곧 임신 그 자체를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결국 불임과 같은 육체적 불구나 낙태 혹은 영아살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다산성의 어머니로 상징되는 모성에 대한 살의와 혐오” 4가 어머니를 넘어 어머니가 될 ‘나’와 ‘나’의 자식을 겨누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의 세계ㅡ“동화의 시절”이 없다. 이제 여성들은 낙태자 내지 영아살인자가 되고 남편들은 “한수씨”, 즉 “피리 부는 사람” 내지는 “처용”이 된다. 그들은 적의敵意라는 밤손님에게 아내를 내어주는 무기력한 남성들이고 기껏해야 아내에게 “싸움”을 거는 것이 전부다.
오정희의 소설들이 “상식적 소설 끝맺기를 거부”(하응백)하는 것은 바로 가부장제의 현실에 대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3. 자아 정체성 탐구
오정희의 초기작들이 낙태와 영아살해의 방법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모성성을 재구성했다면, 1978년 발표된 「꿈꾸는 새」 이후로 오정희는 작가 자신의 개인사적 변모와 더불어 모티프상의 변모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꿈꾸는 새」는 중산층 중년 여성이 아이를 갖고 난 뒤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권태를 기록한 작품이다. 「비어 있는 들」과 「어둠의 집」 역시 중년 여성의 외로움, 일상의 단조로움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꿈꾸는 새」와 함께 분류될 수 있다.
다음해에 오정희는 자신의 유년 시절의 기록물이라 볼 수 있는 「중국인 거리」를 발표하고 이어 이와 비슷하게 성장 소설의 외양을 가진 「유년의 뜰」을 발표한다. 하응백에 따르면 이 소설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선 시간여행의 한 축”이다. 『불의 강』의 단편들이 육체적-심리적 불구를 앓는 여성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의 공간적인 단면을 그린 것이라면 중단편의 분량을 가진 「유년의 뜰」과 「중국인 거리」에서는 어린 시절의 ‘나’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언뜻 보면 「유년의 뜰」에서 가장의 부재 상황으로 인해 ‘노랑눈이’의 가족이 겪게 되었던 일탈적인 갈등은 아버지의 귀환이라는 결말로 인해 수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랑눈이’를 비롯한 소설 속의 여성 인물들은 ‘부네’를 단죄하는 ‘외눈박이 목수’와, 언니를 패고 엄마를 욕하는 ‘오빠’로 대표되는 남성적 성규율에 포섭되지 않고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가 ‘부네’의 가정처럼 건재하든지 ‘노랑눈이’의 가정처럼 부재하든지 아니면 ‘순자’의 가정처럼 무력하든지간에 여성의 꿈과 현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로서의 아버지가 허구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랑눈이’가 과도하게 먹을 것에 탐닉했던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버지의 귀환과 함께 구토 증상을 보이는 것은, 가장되기를 포기한 ‘오빠’로 인해 일단락된 권력-욕망의 대결이 아버지가 돌아오면서 다시(아마도 무한히) 반복되리라는 것을 예감하는 데서 발생한 신경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는 ‘노랑눈이’를 비롯한 여성 인물들이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끝끝내 실패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중국인 거리」에서는 이러한 가장 對 여성이라는 대결 구도가 표면적으로는 보이지는 않는 대신에 모성성의 복합적인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여덟 번째 아이를 출산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완구점 여인」에서 가정부를 보는 것처럼 경멸적이지 않고 동정과 연민이 실려 있다. 이전의 작품의 관점대로 모성을 여성이 가부장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편입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서의 다산성이라고 본다면, ‘나’의 어머니야말로 바로 그 (혐오스러운) 모성을 갖춘 인간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인식론적인 전환은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제도 바깥의 표상이었던 ‘매기 언니’의 죽음이 ‘수녀’의 죽음과 겹쳐지면서다. 수녀는 위의 모성과 어울리는 인간형은 아니지만 순결이라는 가부장적 성규범에 극단적으로 합치하는 남성의 이상형 중의 하나이다. 반면에 ‘매기 언니’는 ‘나’의 관점에서 제도 바깥의 여성으로서 나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던 인물이었으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이후 ‘치옥’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제니’가 고아원에서 보내지게 되는 일련의 사건은 ‘나’로 하여금 환상을 버리게끔 하고 여성의 현실에 눈뜨는 계기가 된다. 그리하여 ‘나’는 ‘나’가 즐기던 중국인 남자의 시선이 사실은 다산성으로서의 모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생이란…… /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뒤를 이을 어떤 적절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다만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찬 어제와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내일들을 뭉뚱거릴 한마디의 말을 찾을 수 있을까.” 5
ㅡ 중국인 거리 中
그리하여 “또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머니는 죽을 것”이라는 ‘나’의 예감은 점점 더 굳어져 가고, 이제 여덟 번째 아이를 낳음으로써 발생한 어머니의 죽음은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는 ‘할머니’-‘수녀’의 죽음, 나아가 ‘매기 언니’의 죽음과도 동일시되며, 자신의 초경은 그 죽음의 대열에 자신도 포함되었다는 것을 절망스럽고 막막한 자각의 계기가 된다. 거칠은 이분법으로 나누었던 모성-여성이라는 존재가 이렇듯 “알 수 없는, 다만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차” 있음을 깨닫게 비로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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