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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활자

페미니즘에 관한 오해들

  우리나라에는 유독 자신을 XX주의자, XX이스트(-ist)라고 밝히는 것을 유난 떤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특히 그것이 페미니즘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어느 자리에서든 ,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각주:1]는 상대방의 수상쩍은 눈초리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몇몇 독자들도 제목에서부터 뭐야 된장녀야?’ 하며 눈쌀을 찌푸린 채 신문을 쓰레기통에 박아 넣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다.

  최근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한 술 더 떠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모 패션지에 투고한 것이 구설수에 올라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이런 수준 이하의 글을 싣고 발간한 편집자도 문제지만, 더 무서운 것은 저런 몰상식한 발언을 옹호하는 부류다. 아마도 페미니즘(Feminism)의 에프(F)자도 들어본 적 없는 자들이리라.

  이처럼 오늘날 페미니즘은 대중문화에서나, SNS에서나 어디서든지 희화화되고 조롱되기 일쑤다. 주로 김치녀된장녀와 같은 코드와 맞물려, 페미니즘에 찍힌 낙인은 지금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 낙인이라 함은, 페미니즘이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함을 주장하는 운동내지 여성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보이는 이런 경향은 최근 여성 혐오를 커뮤니티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일베의 세력 확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는 잘못 인식된 페미니즘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여성혐오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고, 거꾸로 여성혐오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확산시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은 단 한 번도 여성우월주의였던 적이 없으며, 소위 된장녀의 이권 주장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 1세대 페미니즘의 대모격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 de Beauvoir)<2의 성>에서 여성들이 남성 지배적인 세계에서 억압받고 있음을 실존적인 의미 차원에서 보여준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여류 작가’, ‘여류 시인’, ‘여자 대통령같은 단어들이 보여주듯, 개인으로서 한 여성은 인간으로 존재하기 이전에 남성의 시각에서 이미 타자화된 제2의 성으로서 존재한다.

  내가 페미니즘을 처음 접한 것은 2009년 서울대학교 새내기 배움터를 갔을 때였다. 학생운동이 대학 문화의 주류를 이뤘던 70·80년대 시절, 여성불평등의 문제는 당연히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알다시피 당시의 가장 큰 화두는 반독재투쟁이었으며,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노동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8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운동권 내부에서 여성 중심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되었다. /녀들의 문제의식은 대학가에 알게 모르게 자리 잡았던 가부장적 잔재나 군대 문화를 객관화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성폭력 같은 훌륭한 제도를 후배들에게 남겨주었다. 반성폭력이란 공동체 구성원 간에 존재할 수 있는 성적 억압이나 착취를 방지하자는 운동으로서, 상대를 성적으로 묘사하는 일을 금한다는 식의 내규를 만드는 일 등이 포함된다. 상대방의 외모에 관한 언급을 하면 안 된다는 항목 같은 것에는 극성을 부린다며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필요성 자체는 누구나 공감했었다. 상대방이 나를 이성적인 소통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만 취급한다면 얼마나 불쾌할 것인가? 너는 남자니까 무거운 거 들어”, “너는 여자니까 설거지해같은 말이 동기와 선후배 간에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 역시 은연중에 성역할이 고착화되는 것으로 의심해봐야 할 문제라고 반성폭력을 고안했던 선배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운동이 대학가에서 거의 자취를 감춰가는 오늘, 페미니즘 역시 학생운동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여성주의 단체가 명맥을 유지하는 대학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러니 어떤 젊은이가 반성폭력 같은 것에 신경이나 쓸 것이며, 이렇게 페미니즘이 실종된 문화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직장과 가정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성폭력이 횡행할 것인가?

  그러므로, 김태훈이 자신의 글에서 “21세기는 온전히 페미니즘의 시대다라고 적었던 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오히려 지금은 페미니즘이 실종된 시대다. 다시 말하거니와 페미니즘은 여성의 신체적 조건이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남성만 군대에 보내자고 주장하는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고정관념에 저항하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양성이 평등하게 대우 받으며 소통하는 세상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이성(異姓)을 생식기로 지칭하는 인터넷 문화가 범람하는 요즘 그러한 세상은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1. 1919년 경 김동인 등이 영어 'he'를 ‘그’로 번역했고, ‘she'를 번역하는 것이 마땅치 않자 일본어 ‘かのじょ(彼女)’를 직역해서 ‘그녀’로 썼다. 그리하여 오늘날 ‘그’와 ‘그녀’가 3인칭 대명사로서 각각 남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녀’는, 남성만을 가리키는 현재의 ‘그’라는 말 대신 여성도 함께 가리키는 말로서 주로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영어 'they' 역시 ‘그들’로 번역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그들’ 대신 ‘그/녀들’을 사용한다. 필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바가 많고, 이 표현이 기존의 ‘그’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를 쓸 때, ‘그/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덧붙여, 성씨를 사용하지 않거나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것 역시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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