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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활자

페미니즘에 관한 오해들 우리나라에는 유독 자신을 XX주의자, XX이스트(-ist)라고 밝히는 것을 유난 떤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특히 그것이 페미니즘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어느 자리에서든 “저,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는 상대방의 수상쩍은 눈초리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몇몇 독자들도 제목에서부터 ‘뭐야 된장녀야?’ 하며 눈쌀을 찌푸린 채 신문을 쓰레기통에 박아 넣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다. 최근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한 술 더 떠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모 패션지에 투고한 것이 구설수에 올라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이런 수준 이하의 글을 싣고.. 더보기
MEDICUS 간이품평회 (15/06/24) 더보기
관악 시집도서관을 다녀와서. 관악 시집도서관을 다녀와서. 근대 사회가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산문의 시대가 들이닥쳤다. 시적인 상상력, 시로부터 파생되는 행동 양식들은 비정상적이고 퇴폐적인 것, 소위 비이성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부르주아의 부족한 교양을 계몽시키기 위해 전(前) 지배계급이었던 귀족들은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산문을 기반으로 한)을 그들에게 제시하였으며 곧 소설은 근대문학의 사실상 전부가 되었다. 산문적인 생활양식, 즉 이성적 주체가 중심이 되어 그 내면을 서사의 구조에 충실하게 서술해내는 방법이 시민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상은 규칙적인 성질을 가진 것으로 재편되었고 광기는 이성이라는 새로운 주인에 의해 추방되었다. 이 생기 없고 따분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만적인 인간.. 더보기
고재종ㅡ생태에서 인생태로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노래한 시인은불행은 나의 신이었다고 적었네.오늘 나는 목백일홍 꽃그늘에서석 달 열흘은 사랑하리라고 적어도나의 큰 죄과는 어쩔 수 없네, 늘 삶의 바깥에숨은 음모가 있는 거라고 핑계댔으니불행은 내가 창조한 신이어서,저 황홀한 아편 송이송이 같은 색(色)들아편 맛 같은 색정(色情)에 저항하지 못하는삼복염천의 호사를 어찌하랴.회의하다니 몽상하다니, 고통은 여기 있고우울이라니 동경이라니, 죽음은 내가 원했다.새 애인을 만나 전 남자의 아이를 지우러 가는여자가 걷는 길처럼내가 걷는 길은 언제나 나의 형벌이었으니삼복염천 개는 제발 목 달지 말고, 피비린내는참수의 무리가 닥치기 전에온통 색뿐이어서 색정뿐이어서천지가 따로 없는 저 황홀로 터지며석 달 열흘은 사랑하리라 해도, 복날개처럼 늘어진 환멸.. 더보기
박용철 - 로맨스 로맨스 - 박용철(朴龍喆) 너희는 이를 가리켜 어리석다 부르느뇨 내 생명의 불길이 이제 차츰 줄어들어 세상에 대한 욕망이란 연기같이 사라질 제 오히려 저를 만나 한마디 말씀하려 함을. 저의 손 내 가슴에 두 손으로 부여안고 그리 못한다면 얼굴 가만히 보랏으며 그도 못한다면 고개 깊이 숙이고 다만 한 말은 그대여 나를 용서하라. 하찮은 다툼이 아니런가 부질없는 자랑이 아니런가 서로 마음의 고향을 등지고 돌아올 길을 막았더니. 수많은 꿈에만 거리낌 없이 그대 발 아래 엎드렸으나 오ㅡ 말하라 그대 또한 아니 그러하였던가. 그대 찬란한 의상에 빛나고 웃음의 걷는 걸음 앞에 가지나 네 마음 속을 깨무는 어둠을 내사 안단다 보았더란다. 나의 가슴 속에 맺혔던 원한의 매듭매듭 이제 사라지고 지는 해 온 들에 분홍물 .. 더보기
죽음 개가 죽으려 한다. 중학교 때 데려왔으니 10년도 더 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은 진작 넘겼고 내일 당장 어떻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이름은 꽃님이다. 내 기억은 아빠가 데려온 날부터 꽃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꽃님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얘기해주고 있지만, 확실치 않다. 꽃님 하면 일반인이 남자 연예인과 데이트 하던 TV프로에 나왔던 바로 그 일반인 꽃님과 분명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구애하고 했을 남자 연예인들의 어렴풋한 얼굴과, 그것을 보고 있던 나와 브라운관 사이의,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공기가 떠오른다. 그것은 꽤나 축축하고 명징한, 내게는 '가정'이라는 이미지와 상통하는 벽지의 백색이다. 사정이 있어 2주 정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꽃님은 그새 팍삭 늙었다. 부모님 몰래 새벽.. 더보기
이이체 - 詩 詩 이이체 몸에 당신의 일기를 베끼고 바다로 와서 지운다. 내 죽음으로 평생을 슬퍼해야 할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 당신은 말해진 적 없는 말. 모든 걸 씻고, 이렇게 당신이 바다에서 눈물을 흘린 게, 눈물을. 바다의 푸른 계단이 차례로 무너져 내리고, 절벽에서 하얀 고통들이 비명을 지르며 부서진다. 거품들이 분말처럼 흩어지면 당신이 흘려둔 해식애로 세워지던 안개도시. 파도는 내 몸에 알맞다. 나쁜 말들뿐이다. 나는 아직 당신에게 내 얼굴의 절반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당신은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가. 나는 쓴다. 쓴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쓴다. 쓴다고 생각하기 위해 쓴다. 쓴다. 지운다. 카우보이비밥을 보고 싶다. 맥주 몇 잔 마시면서. 특별할 것도 없는 에피소드들. 기억에 남는 장...면들 몇. 음.. 더보기
꿈과 여러 가지 이미지 카메라(leika r6,1990년産)와 가정용 독서실 책상과 자동차(구형 아반떼, 흰색)와 전자피아노(멜로디언이어도 좋다) 등을 사고 싶다. 종하가 꾼 꿈. 너는 간밤에 꾼 꿈을 까먹었다고 해놓고 어제 있었던 일을 꼭 꿈처럼 얘기하는 재주가 있다. 꿈은 무목적의 합목적성(칸트)에 가장 들어맞다. 여러분은 예술의 필요성을 수긍하기 위해서 단지 이것만 떠올리면 될 것이다. 꿈을 꾸기 위해서 다시 잠을 청할 때의 나른함과 눈꺼풀에 걸린 적당한 무게. 돌아오는 길에 통화했다. 버스 계단을 오르면서 약간 어지러웠다. 고작 꿈을 꾸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것은 미학적으로 올바른 꿈. 느린 시간의 잠. 나이가 드니 자주 힘이 빠진다. 유년에 무한히 잃어버리던 길. 잡은 손을 빠져나가는 손. 올 겨울은 반드시 몽골에 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