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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羅cahier du cinema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 (2013)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기주봉"씨가 짤막하게 3번 나온다. 나는 홍상수의 <북촌방향> 이후의 영화들에, 따지자면 비토세력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이미 그는 어떤 반열에 올라가버린 것 같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을 '3번'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깃발에 대한 선문답 역시 그렇고,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홍상수라는 감독이, 아무리 시덥잖은 시트콤을 만들더라도 그 대화가 그 전의 작품들에서의 여-남배우의 대화들을 상기시킬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는 것이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는 아주 잔인한 의미에서의, 진정한 감독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해원>은, 너무 슬프쟎은가? 이전에 남주가 이토록 처절하게 운 작품은 없었다. 해원이 더 자유로울수록, 수정이 자유로울수록, 경진과 예전과 보람이 제 삶을 찾아가고 일기를 매일 쓰면 쓸수록 성준과 재훈과 성남은 그녀들이 찾은 만큼을 다른 데서 잃어야할 것이다. 그가 좀더 세련된 사기를 치는 것인지, 아니면 불구가 되어버린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그 진위여부는 끝내 판단할 수 없겠지만. 정은채와 이선균의 키스씬은, 도저히, 한국 영화사에 두번다시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역겨우면서도, 그런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도록 하는 감독의 역량도, 재주라면 재주인 것이다. 이런 사소한 것만으로도 그는 풍부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하물며 꿈씬들은? 알량한 정신분석학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존재 그 자체에 보내는 찬동연설이다. 윤리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정치적으로라면 무조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