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 SCRAPPED/철학

정성일 펌글

화라 2016. 6. 16. 02:47

이것은 불길한 징조이다. 그건 단순히 포르노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다. 포르노에 대한 관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그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건 있어온 일이다. 그리고 그것으 시대와 나라의 조건에 상응하는 사법적 제도와 교육에 의한 훈련된 도덕으로 제한하고, 비판하고, 억압시켜 왔다. 그러나 포르노는 두 가지 힘을 빌어서 끊임없이 저항해왔다. 그 하나는 남의 성행위를 '훔쳐보고 싶어하는' 욕망이고, 또 하나는 그 욕망의 집단적인 형태가 창조해낸 수요에 의해 이윤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유기적 자본이 만들어내는 재생산과 유통구조이다. 문제는 그 두가지 결합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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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디오는 이것을 매우 다른 소비의 형태로, 말 그대로 '질적 전화'를 가져왔다. 비디오는 소비를 미분화시켰으며, 동시에 관객에 관한 그 어떤 집단적인 관리나 감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소비는 개인화되었으며,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였다. 비디오에서 '미성년자 관람불가'는 그저 거기 붙어있는 활자 이상의 아무 의미도 없다. 이제 이 비디오를 소비하는 것은 더 이상 모험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젖소부인 바람났네>인가. 이 비디오는 더 '야한' 것도 아니며, 더 '화끈'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것은 소프트 코어 포르노가 일반 상업영화와 거의 유사한 시장규모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유감스러운 예이다. 상업영화 속에서 성공작이란 더 '재미'있고 '유익'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집단대중 속에서 하나의 담론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성공은 유행을 낳고, 유행은 문화 속에서 헤게모리를 잡고, 헤게모니를 잡은 유행은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이 된 유행은 소비를 전염시키고 강요한다.


한편으로는 은밀한 비디오의 '야한' 문화가 또 한편으로는 공개적으로 일상샣왈 속에 스며들어서 유행을 확대 재생산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피와 살을 나누어주고 있는 소비자들은 이 따분한 '노출' 정도에도 지치지 않고 새로운 환상을 꿈꾸는 어린 동생들일 것이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나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동생이 소프트 코어 비디오를 보면서 상투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흥미진진한 10대의 넘쳐나는 상상력을 낭비하기를 진심으로 원치 않는다.


1996.05. <젖소부인 바람났네>의 사회심리학


장선우는 여기서 두 가지 시선으로 광주 <이후>를 사유한다. 그 하나는 광주 이후의 한국 세상이 역사의 정신분열증에 빠졌으며, 그래서 이 세상은 도덕과 정의가 사라지고 온통 폭력과 섹스, 소문, 감상적인 대중가요, 그리고 목적을 상실한 방황만으로 가득한 것이 된다. 장선우는 세상의 표면 위를 떠돌며 끊임없이 망설인다. 광주 <이후>의 질서에 대해 거스르지도 않으며 이제 광주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미쳐버린 소녀의 광기를 통해서만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광주에 <관한> 옇와가 아니라 광주 <이후>를 따라나서서 결코 서로 겹치지 않고 영원히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평행선을 그으며, 가끔씩 망설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