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上> 메모 - 서론
예컨대 우리들은 플라톤 속에서 신칸트주의를 읽어내어서는 안되고 또 아리스토텔레스 속에서 스콜라철학을 읽어내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무전제성이란 있을 수가 없으며, 또 앞으로도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정신과학자들은 그 시대의 아들이어서, 자기 자신의 척도를 넘을 수가 없으며, 특히 자기 자신도 절대로 의식하지 못할 궁극적인 세계관적인 가치판단과 태도결정에 의해서 항상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전제성을 완전히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오히려 이 객관성을 일종의 이상으로서 꽉 붙들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이상(객관성을 추구하려는 이상)도 다른 모든 이상들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달성된 일이 한번도 없으며, 오히려 일종의 영원한 과제로서 항상 학습과 토론을 할 때의 목표가 되며 그르침 없이 추구되고 있다. 철학사를 과학적 비판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숙명적인 오류들로부터 철학적인 사색을 보호할 수가 있다.
이 숙명적인 오류들이란, 심미적인 관찰에 빠져드는 것, 해석을 한다기보다 오히려 그 해석에 휘말려드는 그런 주관적인 「해석」, 때로는 영감이 풍부하나 근본적으로는 아무런 체계도 없고 내용도 없는 변증법, 다루고 있는 개념들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그냥 그 말에만 얽매어 있기 때문에, 심각해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겉보기만 번지레한 문제들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소위 「사변」 및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순히 학문장사에 지나지 않고, 그 시대의 소위 정신생활에서 장사하기를 일삼는 「철학」등을 말한다.
pp.2-3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당장 철학사 속에서 진리를 위한 성실한 투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그저 성실한 투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내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는 계속적인 투쟁도 보게 된다. ……철학사에는 진리의 이정표 이외에도, 오해라는 둘러 가는 길이 있고, 오류라는 잘못된 길도 있고, 우연이라는 방해하는 장난도 있다.
정치사가 객관적으로 필연적인 행동들의 과정이 아니라, 한 독재자의 권력의지나 한 황제의 못된 첩의 기분에 따라 추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사에도 우연이 끼여들며, 철학하는 사람의 주관과 자유에서 생긴 비합리적인 것도 끼여든다. ……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철학사는 오류의 역사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말찬가지로, 철학사가 곧 진리 자체의 전부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것이다.
pp.3-4
즉 「우리들은 역사에 의해서만 역사를 벗어나는 것이다」(릭커어트). 철학에는 시간을 벗어난 어떤 것이 있다. 철학의 문제는 낡아버리지를 않는다. 이 문제들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언제나 새로이 활기를 띨 수 있다.
p.4
우리들이 철학사를 연구하게 되면, 개념들이 순수하게 되고, 문제들이 올바르게 제기되며, 사물 자체에로 나아가는 길이 트이게 되므로, 우리들의 사고수단의 본래적인 뜻과 가치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사 자체가 인식비판으로 되며, 그러한 한 진정한 뜻의 철학이다. 왜냐하면, 이때에야말로 우리들은 철학의 여러 문제들의 초시간적인 내용에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 철학사가 진정으로 철학 그 자체라는 사실도 밝혀진다.
pp.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