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현대 철학의 주된 흐름은 1. 현상학, 2. 과학철학(영미 과학철학하고는 다릅니다)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철학쪽은 제가 잘 몰라서 뺐습니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흐름은 훗설과 하이데거의 영향에서 벗어나 프랑스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되찾자는 움직임으로 베르그송에 대한 논의가 두드러지게 활발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즉 베르그송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논의도 아직은 1과 2의 흐름에 포함된다고 보아야지 독립된 흐름을 구성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형편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이 두 흐름 중 프랑스의 현상학은 레비나스와 메를로-뽕띠, 리쾨르 등을 통해 한국에 많이 알려진 편입니다만, 2의 흐름은 거의 소개된 바 없습니다. (바슐라르조차 과학철학자가 아니라 몽상의 미학자로 알려져 있는 마당이니..) 그러나 위의 두 흐름 중 1은 독일로부터 수입된 것이고, 보다 프랑스철학 전통에 부합하는 흐름을 고르라면 당연히 2번 입니다. 데까르뜨를 시작으로 꽁디악 등의 17세기 유물론자들을 지나 18세기 멘 드 비랑의 실증주의적 유심론까지.. 분명 멘 드 비랑에서 단절은 이루어지지만 그 철학적 방법에서 실증성을 중시하는 전통은 베르그송에까지 변함없이 이어집니다. 실제로 이 계열의 철학자들은 철학자인 동시에 자연과학자이거나 의사, 수학자, 심리학자(물론 현재의 정의와는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이거나 그에 준하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이러한 전통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령 과학철학을 특화하고 있는 7대학의 경우, 철학 박사를 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M2(한국으로 치면 박사 코스웍 과정)을 이수하는 것을 필수로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주된 흐름에서 한국에서 유행한 들뢰즈나 라깡, 데리다 등의 이름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데리다의 경우는 현상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간단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은 (그런게 있지도 않았지만서도) 주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사정이니, 프랑스 현대 철학을 전공하겠다는 학생들이 처음 맞게 되는 어려움은 지도교수를 선정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들뢰즈나 라깡을 전공한 교수가 없다는 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르그송의 경우도 그를 전공하고 대학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은 파리 내에는 없는 실정입니다만 그를 중심적으로 연구한 교수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널리 알려진 철학자들 중, 위에 제시된 흐름에 속하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 레비나스나 메를로-뽕띠를 제외한 다른 철학자들의 경우, 전공한 교수가 없는 것은 물론 그 사람들은 중심적으로 연구하고 논의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비판적이든 우호적이든 그들의 연구를 연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가령 들뢰즈의 경우, 들뢰즈를 전공한 대학교수는 전무하고 그를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제가 아는 한 뚤루즈의 몽떼벨로가 유일합니다. (물론 8대학에서는 합니다. 그러나 8대학은 예외로 생각하고 말씀드리고 있고 그 이유는 8대학의 역사에 대해 찾아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한국에 알려진 철학자들 중 오직 예외가 있다면 푸코입니다. 그는 이미 대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에서 강의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철학뿐만이 아니라 사회학에서도 폭넓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들뢰즈는 라깡 등이 대학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프랑스 학계의 전형적인 느림 탓으로 말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분명 타당한 측면도 있지만 이미 레비나스와 푸코와 같은 비교 대상이 있습니다. 왜 그들은 학계에 주된 문제로 자리잡았는데 들뢰즈와 라깡은 아닐까요?
바디우를 말씀하셨는데, 마침 어제인가 신문에 소개된 글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랑제꼴의 강의를 묘사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던데.. 그랑제꼴에서 강의하는 것은 사실 교수로서 명예입니다. 그러나 바디우가 하는 강의는 그랑제꼴에서 이루어지는 '대중강연'입니다. 다양한 연령층의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듣는다고 말하지만,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강의에 그랑제꼴과 다른 학교의 철학도들은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앉아 있는 철학도가 있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한국과 일본의 유학생들입니다.
바디우에 대한 평가는 8대학 출신의 제자들과 동료들에게만 인용되는 8대학의 종이 호랑이입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바디우나 들뢰즈 데리다 라깡 등은 유명합니다. 책도 많이 팔립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에 의해 별로 깊이 전문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 당대의 유명한, 주목 받는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지금도 많습니다. 당대가 끝난 후 살아남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적어도 그들은 프랑스 학계에서는 반죽음 상태입니다. 적어도 현재 상태는 그렇습니다. 그들에 대한 박사 논문은 외국인들, 특히 들뢰즈의 경우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주로 씁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다른 당대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는가. 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영문학에서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이 주목하는 한,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 특히 한국과 일본 같은 미국의 반식민지에서 미국의 주목에 주목하는 것은 또한 자연스럽다는 것. 실제로 한국에 라깡을 들여온 것은 경희대 영문과 권택영선생이었다는 점.
여기에 출판이라는 자본의 문제가 관련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간극을 더 크게 벌려 놓았겠지요. 세상에! 플라톤 전집도 없는 나라에 이미 들뢰즈의 전집이 발간되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의 유행을 따라 프랑스의 별 시시콜콜한 철학자들까지 쓰레기 번역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프랑스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프랑스 철학 전공인 제가 생각해도 과하고, 전공자로서 판단할 때 정작 중요한 저서들은 빠진 채 편향되어있어서 프랑스 철학 전체가 심하게 왜곡되어있습니다.
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권력의 문제가 상황을 더 극단적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즉 서울대의 파워입니다. 서울대 김상환 선생이 연구하고 다루니 라깡이나 들뢰즈의 인기는 나날이 번창하여 끝내 라깡을 모르면 막장이라는 막장발언까지.. (물론 김상환 선생 개인의 능력, 특히 글쓰기 능력도 분명 큰 역할일 것입니다만)
사실 대중적 인기 만큼 프랑스 철학을 강의하는 대학들은 많지 않아서, 한국의 대학 정규과정에서 들뢰즈나 라깡을 접하는 것은- 최근에는 좀 달라졌지만-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국의 철학과는 하이데거 아니면 칸트인데 이렇게 많은 라깡주의자들이 있다니, 이 블로그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며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러나 곧 이유를 알게 되더군요. 이 프랑스 철학의 추종자들은 대개 철학 전공자들이 아니라 문학전공자들입니다. 말한 대로 한국의 철학과에서 프랑스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고, 특히 라깡은 제가 알기로 진태원 선생과 김석 선생이 귀국하기 이전까지 강의된 적 조차 없습니다. 철학과에서 운영되는 세미나 커리큘럼에서 라깡을 다룬다는 말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학교 국문과든 그 과의 세미나 커미큘럼에는 지젝이 있고 라깡이 있더군요. 도대체 번역서도 없는 마당에 뭘 읽는 것인가 싶기는 하지만..
이런 대중적 인기는 악순환을 형성합니다. 유행에 따라 프랑스로 유학와서 들뢰즈로 혹은 바디우로 학위 따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들뢰즈를 강의하겠지요. 사람들에게 프랑스철학은 들뢰즈로 각인됩니다. 들뢰즈 따위 볼 필요도 없다는 말이나, 들뢰즈로 학위 따 오신 분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전공의 편향에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고, 조금 더 나가면 이런 검증되지 않은 철학의 전공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글의 원래 출처는 주소가 사라졌기에 처음 인용을 한 블로그(http://icall7.egloos.com/viewer/325270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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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펌글 (0) | 2016.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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